우울증 환자에게 "자살 충동"이란 정말 말 그대로 "충동"을 의미한다. 사람 누구나 때때로 삶에서 힘든 일을 직면하면 아아,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하는 생각을 쉽게 할 수도 있지만(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다고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니라
진짜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안에서 치밀어 오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자취방에 가만히 혼자 앉아 있다가 길게 늘어져 있는 전선줄을 보면 저걸로 목을 감고 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가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면 홧김에 차도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지하철을 기다리다가도 지금 당장 선로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때로는 칼을 들고 제 온 몸을 마구 난도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모든 생각들이 그냥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마치 성욕이 끓어오르듯 강렬하게 충동적으로 안에서 치밀어 오른다.
내가 지금 맨 정신이기 때문에 이 욕구를 자제하고 있지만, 만약 술이라도 취한 상태였다면 홧김에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은 느낌으로.
그리고 이렇게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죽음에 대한 욕구를 끊임없이 나 스스로 달래고 다스리고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의 힘듦은 나에겐 그만큼 배로 더욱 가중된다. 예컨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밖을 보면 저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다 내팽개치고 창문 바깥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죽음에의 욕구를 억누르고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매 순간 순간이, 나 자신과의 갈등이고 저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나란 인간은 그냥 멀쩡하고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겠지만, 이 안에서는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의 사투.
구글에서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해보는 날들이 많다.
자살 시도했다가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특수청소업체의 블로그에 들어가 누군가가 자살한 뒤의 흔적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나처럼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날들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 봐도,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이란 건 존재하지 않고,
그 고통을 이겨낼 만큼의 용기와 배포는 나에겐 없는 것 같다.
가끔 내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해올 때가 있다. 너는 참 겁이 없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행동력, 실천력이 강하다는 칭찬도 종종 듣는다.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정년보장이 되는 정말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퇴사했는데, 그러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에게는 그러한 저의 모습들이 "패기 넘치는 에너지"로 비춰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패기가 넘친다'거나 '도전적'이라거나 겁이 없는 사람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인간이다.
단지, 지금 현재의 삶이 나에게 너무나 힘들고 버거워서 어디라도 도망치고 싶고 차라리 당장 죽어서라도 이 모든 무게를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최소한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퇴사하는 게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자살하는 것보다는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길에 뛰어드는 것이,
그래도 자살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엇인가 두려운 것에 직면할 때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오를 적마다 항상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게 죽는 것보다는 쉽겠지."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다.
열심히 매일 주어진 약을 꼬박 꼬박 먹고, 이따금씩 심리 상담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언론에서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면, 대단하다, 참 부럽다,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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