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충동과 자해 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10년도 더 된 먼 옛날(?), 나의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 시간에, 청소년기는 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뇌의 발달 영역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행동이 앞서고 다소 충동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하지만, 20대가 지나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 강해진다는 내용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적 정말이지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였다. 물론 절대 바깥으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교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친구 하나 없이 조용히 말 없이 자리에 늘 혼자 앉아 있던 존재감 없는 학생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아마 그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으리라. 내게 커터칼로 내 몸 이곳 저곳을 긁어서 상처를 내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자해를 시작하게 된 건 고3때였다. 실은 정말 죽고 싶어서 자살을 할 작정으로 학교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보았는데, 내가 고소공포증이 되게 심했던지라...... 그 때 옥상에 올라가서 생각보다 "죽는 게 정말 무섭다"는 걸 알게 되었던 거다. 몇 발자국만 떼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본다면 모든 게 다 끝날 수 있는 건데 그 몇 발자국 떼는 용기를 내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한참을 옥상에서 혼자 그렇게 서 있다가, 나는 자살을 해낼 수 있는 배포 큰 인물은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내려왔는데......
그렇게 내려오고 보니 차마 죽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살아내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한 나란 인간. 그런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그 때부터 내 몸 이곳 저곳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 저곳 난도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겁이 많은 나는 그것조차도 못했다. 한 번은 정말 이제 갓 개봉한 새 커터칼의 서슬 퍼런 칼날로 아주 깊숙이 내 팔뚝을 긁은 적이 있었는데, 30분이 넘도록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누르고 압박을 해도 피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자 나란 인간은 정말 "반사적으로" 근처의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게 내 본능의 요청이었다. 약사 선생님은 어쩌다 이런 부위에 이런 상처가 났느냐 물었는데 그냥 그 때 대충 위험한 공구를 다루다가 삐끗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던 기억. 약사 선생님께서 이런 저런 응급조치를 해 주셨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칼로 상처를 내어 피가 흐르면 잠시 동안은 그 따끔거리고 쓰라린 고통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 피부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어 좋은 것(?)도 있었다. 몸이 아픔으로 인해서 마음은 덜 아파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자해를 한다는 걸 내 입으로 직접 말해본 적은 없었지만, 상처 투성이인 팔뚝을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내보이고 다니기는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딱 중2병 관종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 때의 나는 그랬다. 누군가는 제발 이 상처를 보고 나를 좀 바라봐 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 한 사람은 제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 시절 나는 정말 그만큼 힘들었고, 절박했고, 외로웠고 또 괴로웠다.
대학 전공 수업 시간에 배운 게 정말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해를 하는 습관은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20대가 되고 나니 커터칼보다도 나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훨씬 좋은 도구들이 많아서 (술과 담배라는......) 굳이 내가 내 몸에 상처를 내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대학 시절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대학 시절 청소년기의 발달 특성과 학교, 제도교육, 교육과 사회, 심리학 등에서 여러 지식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무엇이 어린 시절의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었는지, 왜 나는 그 시절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나의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그 전까지는 그저 미워하고 배척하기만 해 왔다면 그 때부터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살면서 공부가 중요한 이유,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철학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 언젠가 이것도 다른 글에서 제대로 풀어보고 싶지만 이 글은 그 주제가 아니니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내가 스물여덟 나이에 처음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이후로도 계속 꾸준히 병원을 다니면서 의사 선생님께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좀 더 일찍 병원에 왔더라면, 좀 더 일찍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말. 마음의 병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돼 10여 년을 넘게 지속되어 왔다. 매일 밤 자기 전 자살을 생각하고, 영원히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느니 혹은 나 자신이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울면서 잠들던 학창시절, 그 때 내가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더라면 30대인 지금의 나는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 한번씩 궁금해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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