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중간에 몇 달 병원을 임의로 끊었던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도 나는, 약물이 없으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걸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우울증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땐 꼭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병명이 "우울증"이라고 해서 우울감을 남들보다 자주, 많이 느끼는 것이 꼭 우울증일 것 같지만 내가 경험했던 우울증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무기력"이 가장 큰 증상이었다. 그리고 그 무기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이 피로하고, 지치고, 힘이 나지 않고...의 수준을 뛰어넘어서 정말 일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력"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1. 그냥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걸을 힘이 몸에서 나질 않아 옆에 있는 벤치에 발라당 누워서 한참동안을 있기도 하고(주변 사람 시선 전혀 의식하지 않음... 실은 그런 걸 의식할 여력조차 없었음),
벤치가 없으면 맨바닥에도 그냥 철퍽 주저 앉곤 했다.
2.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일에 집중하는 것 하나하나가 정말 발끝에서부터 몸의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야 가능한 일들이었다. 예컨대 펜을 잡기 위해 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리는 움직임조차도 무슨 헬스장에서 고중량 무게 들 때처럼 힘이 들곤 했다. 정말 말 그대로 "힘이 들었다."
3. 퇴근을 하면 저녁밥도 먹지 않고서 바로 침대에 눕기 일쑤였고,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이면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종일 가만히 침대 위에 누워 있곤 했다. 그렇게 누워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나지 않아 가만히 늘어져 있었다.
4.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냥 세탁기에 옷 넣고 버튼만 누르면 세탁기가 다 해주는 빨래를, 그것조차가 힘에 부쳐서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세탁기 버튼 몇 개 누르는 것조차가 힘들었다는 말이다...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 정도로까지 무기력이 심해지다 보니 회사에서의 생활도 점점 망가져갔다. 그 어떤 업무에도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실수가 잦아졌으며, 그렇게 돌아오는 업무에서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내 자존감을 더더욱 무너뜨리면서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힘이 들고, 가만히 앉아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 라는 게 그냥 단순히 삶이 힘들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정말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처음으로 느껴봤던 것 같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니 정말 살아있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져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누적되고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한 충동으로 끓어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때 중력을 이겨가면서 활동을 하는데... 그 중력을 이겨내는 게 힘들다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이 지구의 땅바닥이 나의 신체를 계속 밑으로 끌어당기고 있고, 나는 그 바닥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이겨내는 게 힘들다...??는... 그런 느낌을 계속 받았던 것 같다.
계속 끝없이 아래로, 밑으로 처지는 느낌.
심적으로도 그렇지만 육체적으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우울증 혹은 무기력 완화에 도움이 된다"
라는 말들도 많이들 하지만,
그 때 당시 나는 이미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에 출근을 해서 저녁 7시쯤 집에 들어와 10시쯤에 잠을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운동을 해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서 개인 PT를 끊고 운동도 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PT를 받는 그 시간 동안은 선생님이 워낙 가열차게 운동을 시켜주시니 힘을 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PT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다시 무기력에 빠진 나로 되돌아오곤 했다.
도대체가 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울증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결국 그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는데, 퇴사를 하고 나서 한 석 달 정도를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됐다. (안 했다기보다는 못 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터...) 그 때는 정말이지 나를 제어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하루종일 밥 한 끼 먹지 않고 집에 누워만 있게 되었고, 밥을 먹지 않으니까 기력이 더 안 나는 건 당연지사.... 아무것도 먹는 게 없었다보니 이따금씩 몸에서 강렬하게 에너지를 요청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한번씩 무거운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가서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을 사와다가 그걸 마시곤 했다. (그럼에도 절대 씹어 삼키는 무언가를 사오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것도 그때의 나에겐 너무나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한 석 달을 폐인처럼 살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정신 차리고 재취업을 했는데,
확실히 "무기력"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는 한 것 같긴 하다.
(......비록 재취업을 하고서 무기력 증상은 어느 정도 많이 나아지긴 했다마는 불면증이라는 새로운 증상이 등장해서;;;.... 여전히 나는 매일 약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 스스로 "나아졌다"라는 것을 느낀 부분도 바로 무기력이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한 2~3주 정도가 지나고 났을때, 음...글쎄... 이걸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신체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걷힌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몸이 가뿐해지고, 훨씬 가벼워지고, 길을 걸을 때 발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그 전처럼 힘이 들지 않았다.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었던 어두운 장막도 차츰 걷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아아, 이래서 우울증을 병이라고 말하는구나, 병은 약물로 치료를 하는 게 맞는 거였구나, 싶었다.
비록 정신과 약물을 먹은 지 2년이 넘은 지금으로서는, 약물치료만이 다가 아니다 싶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본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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