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17년 겨울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방받았던 약은 “브린텔릭스정”이라는 항우울제였다. 처음엔 저용량으로 시작했지만 몇 개월 꾸준히 먹다 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어쨌는지 점점 용량을 늘려서 나중에는 가장 센 용량을 처방 받아 먹기도 했는데, 브린텔릭스의 경우 용량은 5mg, 10mg, 15mg, 20mg 총 네 가지로 시판되고 있다. (각 용량마다 알약의 색깔이 다르다.) 난 그 중 5mg 부터 시작해 1년쯤 뒤에는 20mg까지 처방 받아 먹었다는 이야기.
덴마크 제약회사 룬드벡에서 개발한 항우울제로, 2014년경 시중에 출시되었다. 우리나라에 공식 시판된 것은 2014년 11월. 그러니까 어찌 보면 항우울제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아주 따끈따끈한 신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이 약을 취급하지 않는 병원이나 약국도 많았다. 예컨대 회사 일이 너무나 바빠 늘 다니던 병원엘 가지 못해, 외근 나왔다가 급하게 눈에 보이는 아무 정신과 들어가서 "내가 지금 브린텔릭스정을 먹고 있는데 처방전이 필요해요", 라고 하면 "이 근처 약국에는 이 약이 없을 거예요." 하는 얘기를 꽤 들어봤다.)
기존의 SSRI나 SNRI 계열과는 다른 작용 기전을 갖고 있는데(SSRI, SNRI가 궁금하면 여기), 단순히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기만 하여 우리 몸 속 세로토닌의 양을 늘리는 게 아니라, 세로토닌 수용체를 직접 건드리고 조절하면서 동시에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하는 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약알못인 내가 봤을 때는 그게 대체 어떤 점에서 브린텔릭스만이 갖는 차별점인지는 잘 이해가…ㅠㅠ)
■ 브린텔릭스정, 효과
(전문적인 설명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의 경험담입니다.)
처음 복용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정말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었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먹은 지 일주일이 지나니까 몸이 엄청나게 가뿐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어제까지의 내가 마치 장막 같은 것에 돌돌 둘러싸여 있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못 보고 계속 혼자 발버둥치며 허우적대고 있던 사람이었다면, 오늘의 나는 그 장막이 걷히고 내 앞에 따스한 햇빛이 펼쳐진 느낌. 어제의 내가 꼭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 내가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았을까? 사는 게 어찌 보면 별것 아닌데.
그리고 어제까지의 내가 저 지구가 매 순간 나를 엄청난 힘으로 바닥으로 끌어들이고 있어서 그 중력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자꾸만 축축 처지고 누워있으려고만 하고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무기력 무기력 무기력… 끙끙 앓아왔던 사람이었다면, 오늘의 나는 그 중력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져서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뿐사뿐, 드디어 나를 저 아래로 계속 끌어당기고 위에서 짓누르고 있던 그 물리적인 무게들로부터 다 벗어난 것 같은 느낌.
약을 일주일 꼬박 매일 챙겨 먹고 났더니 얻은 효과였다. 난 진짜 그걸 느끼면서 우울증이란 것도 정말 약물이 필요한 병이었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고작 약 먹은 것만으로 이렇게 어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될 수가 있다니!! 그래서 한때는 심적으로 너무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이면 무조건 정신과를 추천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효과가 오래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는 것. 한 두세 달 정도 먹고 나면 다시 예전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나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용량을 늘리면 또 잠깐은 반짝 사뿐하고 가벼운 나로 다시 돌아왔다가, 그것도 두세 달 먹고 나면 다시 암흑으로…
결국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다른 항우울제들도 먹어봤는데,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항우울제들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다 싶었던 건 브린텔릭스정이었던 것 같다. 부작용도 없진 않았지만.
■ 그래서, 브린텔릭스정 부작용은?
처음 이 브린텔릭스정을 받아 먹을 땐, 어떻게 보면 내가 인생에서 태어나 최초로 항우울제라는 것을 몸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브린텔릭스정과 리보트릴정, 두 알을 처방 받아 먹게 됐는데, 처음 한 이틀에서 사흘까진 정말 엄청나게 졸렸던 기억이 난다. 진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토요일 오전에 약을 받아 와서 점심 때 그 약을 먹었는데, 그러고 일요일까지 내내 집에서 잠만 잤던 기억.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을 했는데 약간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몽롱함이… 한 오전까지는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근데 이게 브린텔릭스정의 효과인지 리보트릴정의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음.
그렇지만 아아, 이거슨 확실하게 브린텔릭스정만의 부작용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브린텔릭스정의 용량을 한 차례씩 늘릴 때마다 항상 반복 되어 오던 거였기 때문에. 약을 먹고 나서 한 3~4일까지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속이 쓰리다. 단순히 “쓰리다”라는 느낌으로는 부족하고, 그냥 막 토할 것 같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고 그래서 음식도 물도 잘 못 먹을 것 같고… 이래저래 위장이 엄청나게 불편한 것. 그게 딱 3~4일까지 간다. 꾸준히 계속 매일 먹다 보면 한 5일쯤 가서는 사라지는 증상이다. 처음에 나는 이게 약의 부작용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내가 브린텔릭스 용량을 조절할 때마다 항상 이게 반복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대개 보통 약의 부작용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다음에 처방을 해줄 땐 해당 부작용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약을 같이 처방해주시는 편인데, 예컨대 속이 불편해요, 라고 하면 위장 운동을 개선해줄 수 있는 약을 같이 처방해주는 식. (그러니까 정신과 약물에 너무 두려움 가지지 말고 필요할 땐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읍시다)그러나 아무튼 의사 선생님도 내가 이런 부작용을 겪는다는 걸 알고 계셔서, 나중에 우울증과 무기력이 너무 심해져서 거의 한 달을 넘게 꼬박 밥을 못 먹고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의사 선생님이 항우울제 종류를 아예 다른 걸로 바꿔주셨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지내왔다면 브린텔릭스정은 먹기가 힘들 거라고.
아무튼 내가 직접 먹어보고 겪었던 브린텔릭스정의 효과와 부작용은 이러했다. 한 1년 정도를 꾸준히 브린텔릭스정만 열심히 먹다가, 지금은 다른 종류의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데, 지금 먹는 항우울제는 먹어도 먹어도 별다른 진전이 딱히 없는 것 같고......
요즘 들어 느끼는 건, 우울증에는 약물보다도 그냥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 요인" 자체를 없애는 게 제일 직빵인 것 같다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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