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옮기면서부터 곧바로 불면증이 시작됐다. 이유는 사장의 미친 듯한 갈굼. (정말 진심 산재든 뭐든 금전적 보상을 받고 싶은데 아무런 증거가 없어서 슬프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엔 필히 녹음 뜨는 걸 생활화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음)
아무튼 이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불면증이 바로 시작되었는데, 이런 저런 수면제에 대한 과거의 안 좋은 기억 탓에 약을 먹고 싶진 않아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가, 두 달이 지나고 나니 정말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려서, 결국 다시 정신과행. 잠을 못 자게 되니까 거식증마냥 밥도 못 먹게 됐다. 진짜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스틸녹스라면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이미 한 차례 겪어봤기 때문에(▶내가 경험한 스틸녹스 부작용에 대한 글은 여기), 이번에는 "트리람정"이라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용량은 0.25mg. 파란 색의 작은 타원형의 알약이다. 불면증의 단기 치료에 쓰이는 약이라고 하지만 나는 의사의 처방 하에 넉 달째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용 중이다. 솔직히 나도 수면제를 이렇게 장기간 먹는 게 걱정스러워서, 다른 약으로 바꿔주든가 다른 처방을 좀 내려주셨으면 좋겠는데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은 계속 먹어보자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
그래서 넉 달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면제를 복용한 결과, 아직은 "내성"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정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단 1분도 들지 못할 정도로 약물 의존이 생겨버렸다. (진짜 예전에 약 다 떨어졌는데 바쁘다고 병원엘 미처 못 가서 약을 하루 못 먹은 적이 있었는데 진짜 1분도 잠을 못 자고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찌 저찌 겨우 잠을 자게 되더라도 1~2시간 만에 깨기가 일쑤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내성이 생겨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내성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선 약 한 봉지만로는 잠을 잘 들지 못할 때가 있다. 어제 같은 날이 꼭 그런 날이었다. 그럴 땐 의사 몰래 임의로 결국 두 봉지를 깐다...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잠을 자야 다음 날 출근이 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은 망할 놈의 회사가 그 원인입니다.)
이 약을 먹으면서 경험했던 부작용은 정말 골때렸는데, 찾아보니 트리람정이 아닌 스틸녹스 등 다른 형태의 수면제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꽤 흔한 부작용인 것 같은데 막상 당사자가 되고 보면 겁나 무서운 것, 바로 다름 아닌
기억을 잃는 것.
내가 밥을 못 먹는 증상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항우울제와 더불어 식욕촉진제를 같이 먹고 있는데, 그래서 밤에 자기 전에 한꺼번에 이 약을 털어넣고 나면, 자기 직전에, 배가 고파진다. (...) 뭐 거기까진 오케이,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자취방에 탕수육이 있는 것이다. 응? 내가 언제 탕수육을 배달시켜 먹었지?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보니 어제 자기 직전에 너무 허기가 져서 배달의민족을 실행시키고 탕수육을 주문했던 기억이, 아주 아주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나는데, 근데 꼭 꿈 속의 기억 같은 느낌 말이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 외에, 남자친구한테 카톡을 보냈는데, 나는 분명히 자기 전에 "남자친구한테 이렇게 카톡을 보내면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까지 했는데, 생각까지 한 기억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진짜 그 카톡을 보내놨네? 난 보낸 기억이 없는데??
이러고 보니 약을 먹고 나서 잠에 들기까지 그 시간 동안 내가 뭔 짓을 어떻게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내 몸뚱아리 하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슬프기도 했다. 병원에다가도 말씀을 드렸는데, 취침 직전에 먹을 수면제와 저녁 시간에 먹을 약들을 구분해서 봉지에 담아주는 처방을 내려주신 것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병원을 믿고 계속 이렇게 약을 먹어도 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모로 수면제는 정말 좋지 않은 약인 것 같다. 천연 수면제니 아로마테라피니 양파망을 옆에 두고 자면 좋다느니 숙면에 도움될 만한 다른 방법들을 강구해봐야 할 텐데, 솔직히 지금까지는 너무 일이 바쁘고 일상에 여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직장생활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내 몸 다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살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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