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DUR이니 뭐니 해서 정책적으로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지금은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한참 수면제를 복용할 당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6년 전만 해도 병원에서 수면제를 얻기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근처의 정신과를 가도 되고 내과나 가정의학과 같은 병원을 가도 된다. 가서 “제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인데 시험 직전이라 너무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있어요. 수면제 처방 좀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면 대개는 별 말 없이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치의 수면제를 처방해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선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러니까 정신과에서 제대로 진료를 꾸준히 받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웬만해선 일주일 이상의 양을 처방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수면제 중독이 왜 생기느냐,
한 병원에서 그렇게 일주일치의 약을 처방 받아 왔다. 다음주에 다른 병원에 가서 또 똑같은 말을 하고 일주일치의 약을 처방받는다. 그 다음주엔 또 다른 병원으로, 그 다음주엔 또 다른 병원으로……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달치의 수면제를 확보하게 되고, 수면제를 “매일” "꾸준히"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수면제를 매일 먹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알만으로는 잠에 들지 못해서 두 알을 먹게 되고, 두 알로도 잠에 들지 못해서 세 알을 먹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계속 먹다 보면 약에 내성이 생기고 점차 중독이 된다.
그 당시에 내가 먹었던 약은 “스틸녹스”였다. 아마 수면제 중에서는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약이 아닐까 싶다.
내가 스틸녹스를 먹을 때를 떠올려보면, 약의 효과는 대략 이러했다.
일단 처음에 이 약을 먹게 되면, 먹고 나서 15분 정도 지나면 불가항력의 졸음이 쓰나미처럼 내 육신을 덮치면서 스르르 잠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일주일쯤 먹고 2주 먹고 3주 먹고 하다 보면 그 15분이 30분이 되고, 30분이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었다. 약을 먹어도 잠에 들지 못해 결국 두 알을 먹게 되고, 두 알로도 부족해 져서 세 알을 먹게 되고……)
스틸녹스의 경우에는 먹으면 한 5시간 정도는 잠을 잘 수 있었다. 5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면 몸이 알아서 잠에서 깼다. (잠을 더 자고 싶어도 그렇게 몸이 알아서 깼다.) 그런데, 잠을 잤다고는 하지만 이 약을 먹고서는 "제대로 푹 잔 느낌"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소화가 되지 않고 헛구역질을 하거나 속이 쓰린 날들이 많았다. 한 번씩은 정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아예 못 드는 것보다는 약이라도 먹고 5시간이라도 자는 것이 그래도 그나마 더 나았기 때문에 약을 먹었다.
그러나 스틸녹스의 정말 무서운 점은 바로 이것,
위에서 내가, 약을 먹으면 15분, 30분 만에 “불가항력의 졸음이 쓰나미처럼 덮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정말 졸리고 잠이 오는 상황에서, 그걸 정신력으로 버텨서 잠을 안 자고 참으면(?), 환각이 왔다. 술에 잔뜩 취했을 때처럼 몽롱하고 뭔가 기분 좋은 느낌, 세상이 팽글팽글 도는 느낌, 그냥 마냥 뭔가 기분이 좋은 느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 느낌이 좋아서 수면제를 먹게 됐다. 잠을 자기 위해 약을 먹지만, 약을 먹고서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오는데도 정신력으로 잠을 참아내면서 그 환각을 즐기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먹다가, 이러다가는 정말 내가 약물 중독으로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날 단칼에 바로 수면제를 끊었다. 잠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그냥 밤을 새워버렸다. 몇 날 며칠 잠을 못 자서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절대로 수면제는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겠다 생각했다.
요즘 들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한 넉 달 전부터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 받아 먹고 있는데, 지금은 정신과에서 2주마다 의사 선생님께 직접 체크 받아 가며 약을 먹고 있다. 그리고 “내가 스틸녹스를 과거에 이러저러하게 먹어봤는데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있어서 난 스틸녹스를 먹기 싫다, 처방해 줄 거면 다른 약으로 처방해달라”, 말씀드려서 지금 먹고 있는 약은 “트리람정”, 이 약도 실은 지금 이런 저런 부작용들이 많지만 별 수가 없어서 먹고는 있다. 정말이지 나도 약 없이 푹 자보는 게 간절한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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