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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우울증 & 불면증

불면증, 운동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내가 경험한 "불면증"

by iieut 2020. 2. 1.

우울증이야 스물여덟 살 때 처음 제대로 진단을 받았다지만 불면증은 20대 초반부터 습관적으로(?) 있어 왔던 병이었는데, 불면증 역시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왜 병이라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잠을 못 자서 힘들다고 말하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는

 

운동을 빡세게 해서 몸을 지치게 만들면 당연히 꿀잠 잘 수 있는 거 아니야?”

 

운동을 정말 빡세게 해서 몸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면 피곤함은 그만큼 가중되고 정말 졸려 죽을 것 같지만 정작 잠은 못 이뤄서 정말 미칠 지경이 된다. 그게 불면증이다.

 

 

 


 

내가 겪어봤던 불면증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입면 자체가 불가한, 아예 잠에 들지를 못하는 형태의 불면증이 있었고, 잠에 들기는 드는데 한 시간마다 자꾸 깬다거나 매번 가위 눌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대로 잠을 깊게 취하지 못하는 형태의 불면증도 있었다. 누군가는 묻겠지, 낮에 카페인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서 20대 초반부터 나는 절대 해가 진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습관을 들였고, 지금도 최대한 커피는 오전에만 마시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불면증이 시작됐다.

 

왜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인가.

물론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정말 피곤하고 지쳐서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그 때부터 오만 잡다한 생각들이 밀려오면서 피곤함이 싹 가시고 정신이 빠릿빠릿해지며 각성이 됐다. 그래서 한 때는 일부러 불을 끄지 않고 누웠던 적도 있다. 불을 끄지 않으면 불을 끄지 않은 대로 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냥 잠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이상하게 그 때부터 말 그대로 오만 잡다한 생각들, 특히 꼭 "불안을 야기하는 고민거리"들이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와 잠을 방해하곤 했다. 그렇게 새벽 세 시, 네 시까지 잠을 못 이루다 겨우 잠이 들면 그나마 다행, 뻥 안 치고 정말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단 1분도 들지 못하는 날들도 정말 많았다.

 

그렇게 잠을 못 자면 다음날 피곤해서 어떡해요?

 

그렇게 잠을 못 자면 일상 생활 피곤해서힘들 것 같지만,

생각보다 "피곤해서" 힘들지는 않다.

 

대개 내가 불면증을 앓을 때 보면 주변 사람 아무도 내가 전 날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걸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겉으로는 너무 너무 정상적이고 말짱해 보이니까. 오히려 내가 불면증을 앓을 때 나의 주변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텐션이 업 돼서 방방 뛰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그렇게 잠을 못 자게 되면, 이 몸이 현재 비상상황에 직면했다고 판단하고 온몸 기관에 Alert를 가동하며 미친 듯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잠을 못 자게 되면, 오히려 몬스터나 핫식스 다섯 캔은 연거푸 들이켰을 때나 나올 법한 수준으로 엄청나게 각성이 된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정말 너무 빠릿빠릿해지고 온 신경이 다 예민해져서 눈 앞에 반짝반짝 별이 보일 지경.

 

카페인을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도 카페인을 아예 혈관에 들이 부은 느낌의 텐션으로 일상을 살게 된다. 그런 각성상태가 유지되는데 당연히 밤에 잠이 잘 들 리가 없음. 그렇게 계속 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잠을 못 자는 채로 일상을 살다 보면,

 

(1) 신경이 존나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감정 기복이 널을 뛰게 된다. 작은 것 하나에도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른다거나, 별 일 아닌 것에 상처를 깊이 받고 엉엉 울게 된다거나. 점점 미친년이 되어감. 진짜 말 그대로 미친년이 되어감.

 

(2) 밥을 못 먹게 된다.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점차 밥을 안() 먹게 되고 나중엔 정말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게 됨

 

(3) 정신 상태는 미친년이 되어가고, 밥도 못 먹고, 신체가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극에 치닫게 되면서 면역력도 급속도로 떨어지고 이제 그 때부터는 몸 이곳 저곳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사방이 아파오면서 병원을 갈 수밖에 없게 됨.

 


 

“운동을 해서 몸을 지치게 만들어라.”

 

안 해본 거 아니다. 내가 이래 봬도 21살 때부터 운동은 정말 꾸준하게 해 왔던 사람이었다.

 

ASMR도 들어보고 무슨 진정 작용에 좋다는 디퓨저를 방에 두어 보기도 하고 자취방의 조명을 전부 노란색으로 바꾸고 조도를 어둡게 만들어 생활해보기도 하고 진짜 하여간 불면증에 좋다는 건 별짓 다 해봤는데, 결국 어쩔 수 없이 매번 결론은 수면제였다.

 

20대 초반에는 불면증이라고 해도 일시적이어서, 솔직히 그렇게 잠을 못 자서 힘들 때에는 술을 진탕 마시면 해결이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고 매일 술로 몸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 그런데 일상 생활은 계속유지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의 힘을 빌려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젠 약이 없으면 하루도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의사 선생님은 당분간은 계속 약을 먹어보자고 한다.

 

(그냥 어서 빨리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해야……. 지금 내 삶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9할은 회사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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