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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연애 & 사랑 & 사람

회피형이 말하는 회피형 인간 (3) 회피형, 불안형, 안정형과의 연애

by iieut 2020. 5. 28.

▶ 믿고 거르는 회피형? 회피형이 말하는 회피형 인간 (1)

▶ 회피형이 말하는 회피형 인간 (2) 나도 처음부터 회피형은 아니었는데......

 

 

회피형 여자 + 회피형 남자 / 불안형 남자 / 안정형 남자

 

나는 지금껏 회피형, 불안형, 안정형과의 연애를 모두 겪어봤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 딱 그랬다. 회피형이 다른 애착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충 내 경험을 풀어보면 이렇다.

 

 

 


1. 회피형이 회피형을 만났을 때 (회피형 여자 + 회피형 남자)

 

솔직히 말하면, 내 연애사 중에서 가장 무난했던 만남이었다. 정말 정말 무난했고, 서로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시간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사람이라서, 같이 만나는 시간을 시간표 짜 놓고 만나고 싶은데, 전남친한테 그 얘기 했다가 엄청 싸울 뻔했다, 연인 사이라면 서로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시간표 짜 놓고 만난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왜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었다......"

 

라고 말했을 때 그 당시 남자친구는 "세상에!! 시간표 짜 놓고 만나는 거 완전 찬성!! 이런 여자 처음 봤어!!!! @_@"라는 반응으로 환호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주말만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주중에는 웬만하면 자기 시간을 갖는 걸로 해서. 주말에 혹시나 다른 약속이 잡히면 미리 얘기해주는 선에서 합의를 봤고,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게 예의이자 연인 간의 도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웬만해선 서로의 영역에 터치를 하지 않았다. 정말 마음이 편했고, 서로 마주치는 일이 애초에 적다 보니 다툴 일도 없었다. 다만, 이게 연애가 맞나 싶은 생각은 늘 들었다. 마음은 세상 편하긴 한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고 왜 만나야 하나 싶고 점점 이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아져 가는 것도 있었고...

 

그러다 한 번 크게 싸우게 됐는데, 싸우게 된 이유는...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데 이 사람은 전혀 나한테 관심이 없어 보여서... 싸운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단지 "이러저러해서 내가 서운하다"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었다. 정말 딴 말 안 하고 그 말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남친은 그 길로 잠수를 탔다. (......)

 

아무 말 없이 그냥 잠수를 타는데... 아니 그냥 내가 서운하다고 말을 하는데 난 영문도 모른 채 잠수를 당했다. 잠수 타는 새X를 만나면 이렇게나 사람이 피 말리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줄 처음 알았다. 어찌 저찌 해서 겨우 간신히 전화가 됐는데, 헤어지자고 한다. 응? 그냥 서운하다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헤어지자고 한다. (...) 그래도 우리가 이대로 헤어지기엔 만난 시간이 너무 짧지 않느냐, 그래도 몇 달은 더 만나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 설득을 하고 어르고 달래서 다시 만나게 됐다. 분명히 나는 이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과는 내가 하고 달래는 것도 내가 하고 슈발(...)

 

그러고 한 3달 뒤 또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서운해서 서운함을 표현하는데 또 아무 말 없이 잠수. 잠수가 끝나고 나서 날아온 카톡은 "우리 그만해요.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서 그 사람은 내 번호를 바로 차단해버렸다. 내 얘기 들을 생각도 없이 그냥 카톡으로 이별 통보하고 영원히 빠이...... 

 

나도 회피형이지만 이런 식으로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이딴 식으로 잠수를 타거나 이별을 통보해선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절대 무통보 잠수는 타지 않는다. 내가 잠수가 필요할 땐 대개 "나 이틀 정도는 혼자 있고 싶어."라는 식으로 기한을 명시하는 편. (그렇다고 잠수를 안 타진 않음...)

 

결론: 회피형이 회피형을 겪어 보면 배울 수 있는 게 많음

 


2. 회피형이 불안형을 만났을 때 (회피형 여자 + 불안형 남자)

 

정말 최악의 조합이다. 난 이 때 진짜 헤어지고 나서도 몇 달 동안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한 석 달 정도는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자취방에서 하루종일 밥도 안 먹고 잠만 자고 살았다. 정말 너무 너무 힘들었다. 

 

이 사람은..... 나에게 너무나 과한 것들을 요구하곤 했다. 비밀 사내연애였는데 회사에서는 비밀을 지켜야 하니까 그냥 사무적으로 딱 할 말만 하고 할 일만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회사에서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회사에서 나 보면서 좀 웃어줘도 되는 거 아니야?" 

 

사내연애다 보니 매일 얼굴을 보게 되는데 정말 거의 무슨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서운한 게 날아온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우리 사귀고 있는 거 맞아? ...... 

 

언제부턴가 우리는 매일 싸웠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는 관계가 됐다. 하도 그 쪽에서 지랄지랄을 해대니 내가 서운한 건 얘기를 꺼낼 엄두도 못 냈다.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어 점점 부담을 느끼고 속으로 마음을 접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끝이다, 싶었을 때 이별을 통보했다. 남자친구는 울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붙잡았다. 엉엉 우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려서 결국 붙잡아줬다. 그러고서 딱 한 달 뒤, 나는 문자 한 통으로 차였다.(...) 

 

문제는 내가 이 사람이랑 사귀는 도중에 너무 지나치게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던 터라 헤어지고 나서 일정 기간의 요양이 필요했다는 거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피폐해져서 진짜 한 달은 자취방에서 나오질 못했다. 사람 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처박혀 있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이 그 때가 아니었을지.......

 

결론: 회피형 + 불안형 이 조합 절대 반대입니다. 만나지 마세요. 어느 쪽이든 수명이 짧아짐.

 


3. 회피형이 안정형을 만났을 때 (회피형 여자 + 안정형 남자)

 

회피형이 안정형을 만나면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말들이 많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안정형은 정말 멘탈이 강하고, 연애 상대로는 진짜 훌륭한 사람이다.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근데 문제는 나다. 나 때문에 이 사람이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ㅠㅠ)

 

안정형은 정말 놀랍다.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대단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는 능력도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으며 늘 자신감에 차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대의 모습이 종종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글쎄... 음... 나에게는 정보 과부하 같은 느낌이랄까? 어쩔 때는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 양의 범위를 초과하는 느낌이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받아들이게 되어 내가 이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 

 

그리고 나 같은 경우는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상대방한테 맞춰주는 게 평생 습관이다 보니 나만의 주관이 없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이 사람 앞에서 나는 열등감을 갖게 된다. 나는 못하는 것들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의 단점을 더 강하게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 앞에서 더더욱 작아지는 느낌이고, 이 사람한테 뭔가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고, 내 독립적인 영역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으니 나도 모르게 막 대하게 된다(?)... 근데 막 대해도 이 사람이 잘 받아주니까 더 막 대하게 된다(?)... 막 대하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도 모르는 걸 아닌 터라, 결국 언젠가는 이 사람도 나에게 실망하고 질려서 떠나가겠지, 라고 생각한다. 불안해한다. 그 불안감을 통제하고자 더 막 대하고, 더 거리를 두려고 하고, 더 밀어내려고 한다. 내가 봐도 미친 년 같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나를 받아주는 남친이 그저 부처 보살인 것 같은데, 

 

이런 내 옆에서 점점 힘들어하고 내가 언제 갑자기 떠날지 몰라 불안해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니 이 관계도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다 싶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첫 연애를 제외하고,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가장 많이 드러낸 사람이 안정형이 아니었나 싶다. 자꾸 내가 막말을 하게 되고 막 대하게 되니까 이런 내 모습을 보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 또 자꾸 도망치고 싶어함...

 

결론: 회피형은 안정형 만나면 안 됨. 안정형이 넘나 손해임....

 

 


 

 

아무리 생각해도 나 너무 쓰레기 같음....ㅠㅠ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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