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심코 "연애의 과학" 앱에서 "연애유형검사"란 걸 해보게 됐는데 내가 "강한 회피형"이란다. 아니, 내가 그 말로만 듣던... 사람들이 믿고 거른다는 그 회피형이었다고? 심지어 "강한" 회피형이라고? 믿을 수 없어서 애착유형검사라고 하는 걸 다 찾아서 해봤는데 할 때마다 매번 회피형이었다. 아니 세상에 내가 그 말로만 듣던 믿거 회피형이었다니!!! 충격을 받고 구글에서 "회피형"을 검색해 나오는 글들을 다 찾아 읽어보기에 이르렀다. 거의 밤을 내내 지새우며 글을 찾아 읽었는데 결론은
나란 인간 정말 진짜 레알루다가 찐회피형 맞음ㅇㅇ
그래서 이 글은 회피형이란 어떤 인간인가를 나의 경험에 빗대어 서술해보는 글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본인이, 혹은 상대가 회피형이라면, 회피형 사람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를 부디 이 글을 통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내가 봐도 회피형은 연애하기에 쉬운 상대가 아닌 것 같음. 정말 또라이 정신병자 같음. 정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처음부터 연애 자체를 회피하는 게 세계 평화에 이로운 것 같기도 함...)
1. 회피형이란?
회피형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거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사람들한테 상처 받는 것을 대단히 무서워한다는 것. 특히나 내가 진심을 다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내가 믿었던 그 상대로부터 거부당하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나게 강한데 이게 어느 정도이냐면, 물론 이건 지극히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까지 심한 사람은 드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은 내 곁에 할머니밖에 없었다. 17살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되면서 어느덧 할머니는 일년에 한두 번 겨우,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한 번씩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내 머릿속 기억보다 훨씬 더 나이 든 모습이 되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그게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몇 날 며칠 혼자 밤에 몰래 울곤 했다.
내가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방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던 중에 넘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됐다. 보통의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옷을 갈아입는 중에 넘어지지도 않지만, 그렇게 넘어졌다고 해서 다리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할머니가 그만큼 늙어버렸다는 사실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냐면 회사에서 한동안 아무 일도 집중을 못하다가 결국 그 때부터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것.(...)
지금은 아직 살아계시지만, 언젠가는 할머니가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릴 것이란 걸 안다. 그리고 난 그걸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울면서 쓰고 있다.) 할머니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나고 나면, 솔직히 나는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게 전부 무너질 것 같고, 살아 있지 못할 것 같다. 이건 정말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공포다.
요즘은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국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고, 결국 난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될 것 같다. 그게 너무 무서워서 어렸을 때부터 종종, 차라리 그들이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싶단 마음으로 자살 생각도 많이 했다. (진짜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종종... 실은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자체로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냥, 가족만 생각하는 것도 나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결국 "남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2. 회피형의 탄생
"회피형"이란 심리학에서의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에서 나온 말이다. 어릴 때, 양육자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또 양육자와 어떤 형태의 애착을 형성했는지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이론인데...
어린 시절 아이가 양육자를 향해 애정 어린 행동을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 당했을 때,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는 그 나름의 전략을 찾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양육자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무시하는 것. 처음부터 양육자를 회피함으로써 애초에 거부 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대학 시절 교육심리학 수업 시간에 이 이론을 열심히 배웠지만 영아기 때 양육자와의 관계가 평생의 성격을 좌우한다는 게 그다지 와 닿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가 말을 못하던 영아기 당시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는... 기억에 없으니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 성격과 인간관계가 어쩌다 이런 꼬라지가 되었는가를 곰곰이 돌이켜보면... 아마 이 때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나는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부모님이 "사랑한다"며 보여주는 행동들은 나에겐 늘 폭력이었다. 10대 시절 내내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늘 도망치고 싶었고, 부모님을 극도로 미워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20대가 되고 머리가 좀 더 커지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준 것, 그것 역시 (단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부모님은 단지 부모님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판단을 했을 뿐이었고, 내가 그것을 사랑 아닌 폭력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나와 그들에게 있어 "사랑"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었던 거였다. 사랑을 정의하는 게 달랐던 건 단지 나와 그들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엄마일 수 없고 엄마가 나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머리로 이해하면서 나는 내가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조금이나마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 과정은 생각보다 꽤 길었고 꽤 많은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깨달음? 진리? 믿음? 같은 걸 얻었는데, (1)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완전히 이해해줄 수 없고 나 역시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어느 정도의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한의 간격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절대 가까워질 수 없음.)과 (2)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다름을 그냥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긍해야지, 내가 어찌 노력한다고 해서 타인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 얻어낸 거였기에 나에겐... 일종의 가치관, 인생관으로서는,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강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들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걍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지배하고 있는 거임ㅇㅇ
3. 회피형의 특징
기본적으로 나는 나 / 남은 남, 이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박혀 있어서 나 아닌 모든 사람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남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나, 남은 남, 나는 나고, 남은 남이야, 나도 네 영역 안 건드릴 테니까 너도 내 영역 침해하지 마, 대충 이런 마인드로 사람을 대한다.
겉으로는 매우 자립심 강하고 독립적이고 멘탈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마무시한 유리멘탈을 갖고 있다. 타인과 갈등을 겪으면 아무리 사소한 다툼일지라도 멘탈이 개박살나서 한 며칠은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람 간 갈등이 생기면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멘탈이 약해서, 더더욱 타인과 갈등을 안 만들려고, 처음부터 피할 수 있다면 다툼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쪽으로 관계를 맺어간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 사람과 갈등이 빚어질 것 같으면, 그냥 그 관계를 아예 끊어버린다...회피형이 노답인 이유)
우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2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 온 두 사람이 만났는데,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한 것. 그래서 서로 만나면서 안 맞는 부분들 때문에 내가 불편함을 겪더라도, 웬만하면 내색 않고 혼자서 다 감수하고 인내한다. 왜? 그게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이니까. 저 사람이 지금껏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단지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걸 고쳐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 욕심인 것 같고, 왜 굳이 나를 위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습관을 고치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차피 말해봤자 딱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상대방은 꼭 "우린 참 잘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데, 잘 맞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쪽에서 엄청나게 열심히 맞춰주고 있는 것도 있다.
연애 초반엔 한번씩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싶을 때 "이러이러한 거 안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처럼 얘기하지만 나에겐 "이 말을 해도 될까?" 속으로 정말 정말 많이 고민하고 내린 아주 아주 큰 결단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몇 번 요청한 게 안 먹히고, 내가 정말 그렇게까지 큰 결단을 내리고 입 밖으로 꺼내 보인 불편한 상황이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면, "아아, 역시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구나." 하는 믿음이 훨씬 더 강화된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가 속으로 정말 큰 결단을 내리고 말을 꺼낸 것이니만큼 그 부분이 고쳐지지 않고 똑같은 모습이 반복될 때 상대적으로 나는 더욱 큰 실망과 상처를 받게 된다. (거부당하는 경험이란, 그게 어떤 형태의 경험이든 회피형 작자들에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피하고 싶은 경험임) 그 때부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편한 걸 얘기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입을 꾹 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내가 안 맞는 부분에 대한 카운트를 시작하는데......
회피형 특징 중 하나로 "겉으로 아무런 티를 안 내면서 속으로 스코어판 깎고 있다."라는 문장을 본 적 있는데 진짜 이거 너무 맞는 말이다. 처음에 만점에서 시작해서 안 맞는 점을 발견하고 부딪칠 때마다 점수를 깎아나가는 것이다. 처음엔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 맞춰주고 인내할 수 있는데 나도 사람이다 보니 어느 정도가 되면 그게 한계치에 도달한다. 그러면 "더 이상은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어." 하면서 그 때부터는 나와 안 맞는 부분이 발견될 때마다 마음 속 점수판을 깎기 시작한다. 인내심이 한계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이 사람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전하는 행동이므로 이 때 점수판을 깎게 되는 데에는 별 되도 않는 시답지 않은 것들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것들에서 단점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점수판을 깎아가면서, 그 점수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저선을 돌파하면 그 때부터는 헤어짐을 결심하고 혼자서 마음 정리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작자들의 특징이 또 뭐냐면, 상대방한테 다 맞춰주려다 보니 연애하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그게 절대 웬만해선 밖으로 티가 안 난다는 데에 있다. 회피형은 그냥 싸우기 싫어서 잠수 탄다고 회피형이 아니고...... 갈등 자체를 안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싸우고 다투고 그래서 서로 상처 받고 불편한 상황을 처음부터 피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걸 피하기 위해서 혼자 입 꾹 닫고 참는다. 티도 안 낸다. 상대방은 이 사람이 자기 때문에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곳에서 한번씩 폭발하기도 하는데 상대방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는 엄청나게 인내하고 참으며 살고 있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 내 행동과 습관의 교정을 요구하면 그 땐 꼭지가 돌아버린다. 왜?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서 존나 힘들게 다 이해하고 감수하며 살고 있는데 왜 넌 내 모습을 존중해주지 않지? 폭발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전혀 바깥으로 내색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혼자 점수판 깎고 조용히 마음을 접겠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부류의 작자들은 갈등을 최대한 원천봉쇄하기 위해 노력하고, 갈등이 빚어질 것 같으면 그냥 그 관계 자체를 끊어버림으로써 갈등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연애뿐 아니라 그냥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 상황 자체를 안 만들기 위한" 삶을 사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피곤한 일이 된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고 자기만의 영역이 있어야 하고...... 그런 모습들이 겉으로 보면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또 회피형 성향은 타인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그래서 웬만하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을 깊게 주면 줄수록 나중에 받을 상처가 더 커지니까. 그런데 사람이 좋아지면 경계심이 다소 풀어지면서 이 사람한테 기대고 싶기도 하고 의지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왜? 이것도 내가 쓰면서 존나 노답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요새 너무 힘들어서 나는 이 사람에게 공감 받고 싶고 지지 받고 싶음. 그래서 내 속얘기를 꺼내보임. 하지만 상대방은 날 공감해주지 못함. 왜? 이 사람은 나랑 다른 사람이라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무리 내가 시시콜콜 as much as possible 자세히 얘기한다고 해도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만큼은 알아주지 못하니까. 그러면 난 또 상처 받음. 옆에 사람이 있다지만 외로움을 느낌. 상처 받음.
......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얘길 안 함.
그런데 누군가가 좋아지면 자꾸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내 안에서는 그 마음을 어서 빨리 통제해야 한다는 비상 상황 알람이 삐용삐용 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상대를 자꾸 밀어내게 된다.
근데 이게 또 정말 또라이인 것 같은 게, 내가 이 사람을 밀어내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이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난 분명히 알고 있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로 인해 상처 받고 힘들어 하면서도 날 여전히 좋아해주고 나한테 매달려주고 내 옆에 영원히 있을 사람처럼 행동해주면 좋겠다. 이 정도로까지 내가 못되게 구는 데도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회피형 부류는 살면서 제대로 된 따뜻한 인간의 정이라든가...제대로 된 신뢰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일 확률이 클 것 같은데 (적어도 나는 그랬으니까... 하아 눙물...ㅠㅠ), 뭔가... 뭐랄까... 그렇게 자꾸 상대를 시험하려고 하고, 시험대에 올려 놓고 어디 한번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자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날 좋아해준다면,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믿어보게 되고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내가 이 짓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지금까지는 내가 상대를 밀어내기 위해 지랄을 하면, 그 때마다 상대방은 질려하면서 날 떠나갔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좋게 헤어져본 적이 없는데(...) 정말 개쌍욕 들으면서 차인 적도 있었고...아무튼... 근데 진짜 이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내가 봐도 나 존나 또라이임..... 진짜 정신병자인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가 아니면 모두 남이다.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고 웬만해선 남에게 절대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모두와 연을 끊고 혼자 외딴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속을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음...
대개 남자친구한테 털어놓을 수 있는 속얘기란 내가 처음 만난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얘기들인 경우가 많다. 내가 정말로 진짜 내 속마음을 꺼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살면서 그나마 우리 엄마?... 말고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함에 있어서, 감정이 아닌 이성이 앞서는 편이다. 머릿속으로 할 말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입 밖으로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이런 내 모습을 좋게 봐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냥 아무런 필터와 계산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 속 시원히 다 쏟아낼 수 있었으면, 싶을 때가...... 정말 많다. 화가 날 땐 화도 내고 싶고, 짜증 날 땐 짜증도 부리고 싶고... 근데 그게 안 된다. 태생적으로 그게 안 된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답답하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철저히 머리로만 행하려는 버릇이 있다. 남들은 내가 내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줄 아는데, 내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반응을 치밀하게 고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명료한 표현을 하는 거라 사실 "솔직한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근데 나를 겉으로만 대충 보는 사람들은 내가 솔직하게 자기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함... 결국 어느 정도 나를 좀 오래, 깊이 겪어본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좀 뭔가 의뭉스럽고 속을 알 수가 없고 진짜 자기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애초에 생겨 먹은게 이런 인간이니, 기본적으로 친밀하고 깊은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한다. 친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요, 지금까지 연애가 6개월을 넘겨본 적이 없었고, 지금 연애가 그나마 200일을 넘겼지만 이것도 어찌 될지 잘 모르는 상황... 그나마 상대가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서 전보다는 오래 가는 것 같은데...
문제는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도 회피형 상대와 연애를 하면 불안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것.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지만 속을 표현하지 않고, 뭔가 가까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엔 멀어지려 하고, 아무런 내색을 안 하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마음을 접고 있는데 상대의 속을 알 수 없으니 결국 불안에 떨며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회피형 연인은 핵폐기물급 쓰레기라는 평이 많은데 그렇게 한 사람 자존감을 개박살내고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니까 욕을 먹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이 부류들이 제일 노답인 건, 이게 문제라는 걸 자기들은 모른다는 데에 있다. 늘 혼자서 극복해왔고 혼자서 견뎌왔고 혼자서 잘 살아왔다. 그래서 살면서 독립적이고 자립심 강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왔을 거다. 그런 칭찬들이 이 성향이 더욱 강화시키고, 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강하고 잘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우월감을 갖는다. 자신의 강점이라 생각하니 전혀 고칠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 관계에선 회피형 연인으로 인해 지쳐가는 상대방만이, 배려 없고 남에게 의존하는 어리숙하고 덜 떨어진 나쁜 인간이 된다. 이 관계에선 결국 가스라이팅도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래서, 과연 이 거지 개떡같은 성향을 고칠 수 있을까?
노력하면 고칠 수는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모르겠고, 기본적으로 그냥 모든 인간에 대해서, 그냥 인간 자체에 대해서 불신을 갖고 있고 이 모든 행동들도 결국 그 불신에서부터 비롯되는 것들이라, 연인 한 명을 위해 내 성향과 습관을 고친다? 그것도 결국 늘 하던 것처럼, 그냥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인내하고 참고 감수하는 것의 연장일 뿐.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타인도 믿지 못하지만 나 자신도 믿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솔직히 지금 많이 우울하다. 나란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 같아서. 능력도 없고 사람 사귈 줄도 모른다. 30여 년의 인생을 완전히 헛산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뭔가 마음이 되게 허하고 텅 비어버린 느낌이고 그러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회피형 인간은 자신에 대한 강한 열등감을 갖고 있고,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인간,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는데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무튼, 연애 내내 짝사랑만 하다가 끝나고 싶지 않으면 처음부터 회피형이랑은 아예 얽히지도 말라고들 한다. 회피형 인간은 그냥 연애도 회피하며 살아야 한다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회피형 인간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흑흑 ㅠㅠ 내 인생은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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