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저녁부터 갑작스럽게 생리통도 아닌데 꼭 생리통 정말 심할 때처럼 아랫배가 아파왔다. 누군가가 자궁 내벽을 막 긁어내고 쥐어 뜯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배가 너무 아파오고 왠지 열도 나는 것 같기에 다급하에 타이레놀로 응급 처치(?)를 했다. (타이레놀을 많이 먹는 게 몸에 결코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타이레놀은 고등학교 때부터 늘 항상 함께해 왔던 나의 만병통치약. 몸살 많이 나고 허리 통증 근육 통증 많이 앓고 사는 나한테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약이다.)
그냥 잠깐 아프고 말겠지 했던 배앓이는 다음날이 되자 더 심해졌다. 전날 밤에 아랫배가 아파왔다면 다음날에는 허리도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아랫배 윗배 상관없이 복부 전체가 아파왔는데, 복부부터 허리까지 그냥 가슴팍 아래 상반신 전체가 다 아픈 느낌이었다. 꼭 생리통처럼 배와 허리가 아픈데, 생리통 때 겪는 아픔의 한 5배에서 10배는 되는 것 같은 느낌. 배와 허리가 미친 듯이 아파오자 팔이며 다리며 온 몸이 다 경직되어서, 물을 마시기 위해 물컵을 집어드는데 팔이 막 부들부들 떨려오기까지 했다. 원래는 그날도 타이레놀 먹고 버티려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안색이 너무 안 좋아보인다고 병원에 반드시 가 보라고 (잔소리를 하도) 해서 결국 병원엘 가게 됐다.
어느 병원에? 산부인과에.
내 몸은 참 신기하다. 스트레스를 좀만 과하게 받으려고 하면 곧바로 몸이 아파오는 것도 그렇지만, 몸이 아플 때 정확하게 어느 부위에 이상이 있는 건지를 귀신같이 잘 알아챈다(?). 골반염 진단을 받은 게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고 이번 배앓이를 겪기 전까지만 해도 골반염이란 병이 뭔지도 몰랐던 나, 배가 아프면 으레 내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난 이게 분명히 산부인과 영역에서 생긴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산부인과에서 진단해주길 내 병은 골반염이란다.
골반염이란?
“골반염이 뭔가요?” 라고 물었을 때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쉽게 생각하면 질, 자궁, 난소 등 골반 부위에 있는 생식기 전반에 염증이 생긴 거라고 보시면 돼요.”
골반염의 증상
내가 경험한 골반염의 증상이라 하면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생리 기간도 아닌데 생리통처럼 배와 허리가 아픈 느낌”이었지만 증상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고 한다. 열이 올랐고, 온 몸이 으슬으슬 추우며 몸살이 같이 진행될…뻔했으나 타이레놀을 먹은 덕에 열이나 몸살은 심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면 아마 크게 아팠을 거예요. 열도 많이 오르고 크게 아플 뻔했는데 진통제를 먹어서 열이라든가 몸살 증상은 좀 상쇄가 된 것 같네요.”
처음엔 아랫배 통증부터 시작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윗배까지 복부 전체가 아파왔고, 허리도 끊어질 것 같이 아려왔다. “골반염”이라고 하면 이름이 꼭 골반뼈가 아픈 병일 것 같은데 그건 아니었다.
진료 중 의사 선생님이 윗배의 오른쪽과 왼쪽을 꾸욱 누르며 “여기 어떤가요? 아픈가요?” 물었을 때 난 아아아아아악! 이라는 비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궁 안으로 초음파를 넣는데 초음파 기계로 자궁의 이곳 저곳을 쑤시며(?) “이렇게 움직이면 배가 많이 아프시죠?”라고 물으시기에 이 역시 아아아아아아악! 이라는 비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증상이 심하다고 하여 주사도 한 대 맞았고, 5일치 약을 처방 받아 먹었는데, 병원에서 주사를 맞은 이후로도 3~4일은 꼬박 누워서 끙끙 앓았다. 배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무거워서 쉽게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골반염의 원인
골반염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이 질염이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질염에서 시작돼 질염이 자궁 위까지 타고 올라가 자궁, 난소 등으로 염증이 퍼지면서 골반염으로 진행된다고. 그래서 질염에 걸렸을 때 빨리 빨리 제대로 치료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골반염을 직접 앓아본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질염일 때 빨리 처치를 받는 게 진짜 진짜 중요한 것 같다. 지난 일주일간 너무 힘들었다…) 재수가 안 좋으면 성병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임균(임질 원인균)이나 클라미디아 등 성 접촉을 매개하여 전파되는 균…에 의한 감염일 수 있는데, 이 경우엔 성관계를 함께하는 파트너까지도 반드시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균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를 기다리는 중. 그런데 이전부터 나는 두어 달에 한 번은 산부인과 검진을 꼬박 꼬박 받는 편인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던 걸로 봐서 성병은 아닐 것 같다. (정말?) 워낙 학창시절부터 질염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게 나이가 드니까 체력이 달려서 질염이 골반염으로 번지는구나 싶은 생각이...
골반염의 치료
균의 감염에 의한 질병이니만큼 치료는 항생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병원에서 항생제 주사를 한 방 맞았다. 정확히 무슨 주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항생제 주사의 경우 피부 거부 반응이 있는지를 먼저 테스트해야 한다고 하여, 본 주사를 맞기 전 피부 반응 테스트를 위한 검사용 주사를 먼저 한 대 맞았다. AST, (After Skin Test)라고 하는 이 주사는 혈관에 놓는 게 아니라 “피부층”에 놓는 주사로, 맞고 난 직후에 잠시 동안 주사 자국 주변이 살짝 모기 물린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참고로 이 주사 맞을 때 진.짜.정.말.아.프.다. 태어나 처음 맞아봤는데 정말 서른 넘은 다 큰 어른인 내가 그 병원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정말 아프다. 어떤 느낌이냐면 멀쩡한 생 피부를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다.
아무튼 그 검사용 주사를 맞고서, 수십여 분 정도를 대기한 다음 간호사 선생님께서 피부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면 그제야 혈관에 항생제 주사를 놓는다. 이건 그렇게 아프지 않다. 그런데 안 아픈 건 둘째치고 주사기가 정말 컸다. 팔에 놓는 주사인데 그렇게 주사기가 큰 것도 처음봤다. (…)
그리고 5일치의 약을 처방받았다. 처방받은 약은 (1) 씨제이후라시닐정, (2) 록스파인정, (3) 무코린정.
씨제이후라시닐정은 씨제이헬스케어에서 나온 약으로 주 성분은 "메트로니다졸". 트리코모나스증 및 혐기성 세균 감염의 치료에 쓰이는 항원충제라고 한다. ("트리코모나스"는 여성 혹은 남성의 생식기에 붙어서 여성의 질염을 야기하며 성 접촉을 통해 옮겨 다니는 일종의 기생충 같은 균이라고 하고, 혐기성 세균이란 "생존하는 데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균".) 찾아보니 세균성 질염 감염에 주로 처방되는 약인 듯하다.
통증으로 끙끙 앓고 있으니 소염진통제 록스파인정을 함께 처방해주셨고, 이 두 약 중 하나가 속쓰림을 야기하는지 위점막보호제인 무코린정도 함께 들어있다. 심한 경우 입원 치료를 하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입원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요새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19 때문에 병원보다 집이 더 안전한 느낌)
아무튼 지난 일주일간 정말 몸살에 허리 통증 배 통증에 컨디션 최악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솔직히 한 하루나 이틀 정도 앓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픈 게 오래 가길래 놀랐던 병. 코로나 때문에 나라 전체가 난리인데 오늘 오후에 속보 뜨기를 내가 사는 동네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떴다고 해서 충격. 앞으로는 면역력 떨어지지 않게 몸 관리를 정말 잘 해야겠다 싶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트업 퇴사, 스타트업에 환상을 갖지 말지어다. (0) | 2020.02.14 |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