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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스타트업 퇴사, 스타트업에 환상을 갖지 말지어다.

by iieut 2020. 2. 14.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회사에 잠시 몸을 담가 보았다. 

월 급여 200이 한참 못 미치는 말도 안 되는 열정페이로 미친 듯이 갈리며 일했다. 

 

퇴사를 통보하며 정리해 보는, 지난날 나의 경험들.

본격 스타트업에 환상 가진 사람들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어서 쓰는 글. 스타트업의 현실.

 

 

 

1.

기대: 자유롭게 나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현실: 대표의 1인 독재, 이보다 더 할 수 없다.

 

구성원이 겨우 10명 남짓한 아주 소규모의 조직이다 보니 모든 게 다 대표 맘대로 굴러간다. 대표가 정말 능력 있고 똑똑해서 업무 방향을 잘 지시해주면 그만큼 나도 배우고 발전하고 서로 윈윈하는 아주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대개 사회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 어린 젊은 사장님이 그렇게 능력이 대단할 수 있다면, 그런 사장을 만나는 사람은 진짜 그냥 태생부터 인복이 타고났다고 보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많은 회사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정말 많은 회사들이 망하고 있다.

 

어제 말한 거 오늘 말 바꾸고, 오늘 말한 것 내일 또 말을 바꾸고 이랬다 저랬다 아주 난리도 아닌데 뭔 놈의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계획도 없어서 어디 가서 이 얘기 듣고 오면 이거 해야 돼, 저 얘기 듣고 오면 저거 해야 돼, 하면서 직원들을 갈아 넣기 일쑤.

 

그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장이라서 그런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조직을 운영할 줄, 그러니까, 사람을 다루고 움직일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직원들한테 자기 감정을 있는 대로 다 쏟아내는 게 그 일례. 자긴 사장이니까 마땅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 외에도 A 직원 앞에서는 B 직원이랑 비교하며 A 직원을 까내리고, B 직원 앞에 가서는 또 A 직원이랑 비교하며 B 직원을 깎아내리는 식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다 밟고 그 와중에 인격 모독성 막말을 마구 시전하는 것은 일상.

 

C 직원한테 가서 A 직원 오늘 뭐하는지 몰래 들여다보고 자기한테 알려달라는 식으로 직원을 몰래 감시한다거나, 사장이 나서서 회사의 정치질을 조장하기도 하고 정말 그 외에도 말 못할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여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딜 가나 또라이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 또라이가 전체 조직을 움직이는 "사장"이라고 한다면 그 땐 정말 문제가 심각해진다. 

 

(스타트업은 정말 정말 사장의 역량이 중요하다. 들어가 봤는데 딱 봐서 사장이 글러먹었다 싶으면 당장 탈출하도록.)

 

 

 

2.

스타트업 = 지금 당장은 투자금으로 굴러가는 회사,

But, 향후 매출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가?

 

스타트업과 일반 중소기업이 다른 점은 이거라고 보면 된다.

 

사장이 투자자들 앞에서 우리 앞으로 이렇게 할 거예요!” 하고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자기의 꿈을 마구 펼침 > 투자자들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함 > 사장이 자금을 끌어와서 직원들을 고용 > 직원들에게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을 수행할 것을 지시 > 그래서 정말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키게 되면 초대박 성장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현저하게 많다는 것이 현실)

 

그러니까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개 투자금만으로 굴러가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미래에 보다 큰 수익을 창출할 기대를 가지고 여기 저기서 투자를 받아 사업을 굴리고 키워가는 회사.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스타트업" 딱지를 떼지 않은 회사들이라면, 아직까지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을 텐데, 구직자라면 이 회사에 고용될 사람으로서 과연 이 회사가 매출을 발생시킬 능력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취준생 입장에서는 그걸 판별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 나는 이 회사 딱 5~6개월 다녀 보니 이 사업 비전 없다는 게 눈에 보였는데,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더욱,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겉모습이 번지르르 뭔가 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제조/유통이 아닌 무형의 "서비스"를 파는 회사라면, 그 서비스라는 것이 멋 모르는 사람들 마구 낚시질해서 등쳐먹는 걸로 매출을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고민해봐야 한다. 참고로 내가 몸 담았던 스타트업이란, 결국 매출이 나오질 않으니 별 되도 않는 다단계스러운 양아치짓으로 돈을 벌려고 하길래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 회사 말고도 얘기 들어보면 주변 "스타트업" 중에 이런 사례가 꽤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니까 조직을 이끄는 사장, 대표의 역량이 그만큼 중요한 것.)

 

 

3.

이제 갓 대학 졸업한 어린 아이들의 경영놀이 소꿉장난

 

이 회사 안에서는 "마케팅"이라고 하는 게 카페나 커뮤니티에 아이디 여러 개 파서 사람들 우르르 몰리게 하는 낚시성 글 쓰고 댓글 달면서 입소문 내는 게 전부였다. 물론 바이럴마케팅 정말 중요하긴 한데, 이 회사 안에서는 카페 댓글놀이가 사실상 마케팅의 "전부"라는 게 문제였다. 학부 시절 경영학 배우면서 마케팅 이론 많이 배웠는데 뭔 놈의 회사가 타깃도 없고 시장 조사도 하질 않았다. (정말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층에 대한 고민이 1도 없었다.)

 

문제는 진짜 이제 갓 대학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 이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별 되도 않는 댓글놀이가 마케팅인 줄 알고 거기에만 죽자 살자 달려든다는 것.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을 배워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안에서 업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에겐 어떤 느낌이었냐면 젊은 친구가 사장 소리 듣고 싶어서 회사 차리고 자기들끼리 팀장이네 뭐네 직급 달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착각하며 쿵짝쿵짝 소꿉장난하는 느낌

 

나처럼 체계가 있는 기성 회사를 다녀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똑같은 말을 했다. 여긴 회사가 아니라 무슨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이라고. 무슨 사업을 장난하듯이 하는지 모르겠다, 사업이 장난이야?

 

 

4.

그 외에 기타 잡다한 이야기들이라고 하면...

 

스타트업 대표들끼리는 서로 친한 경우가 많아서 일단 업계가 되게 좁고, 몇 다리 건너면 레퍼런스 체크가 다 가능하다는 것도 크리티컬했다.

 

"스타트업 인턴이 도움이 될까요?" 하는 질문들도 많이 듣는데 정말 스타트업도 스타트업 나름이지만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경우에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인턴"이라는 거지 "단순 알바" 필요할 때 인턴직을 뽑곤 했다. (그리고 알바 수준의 근로 조건을 제시하면서 정직원 이상의 퍼포먼스를 요구함. 말도 안 되는 노동 착취.)

 

물론 정말 잡다하게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건 장점 중의 장점이다. 정말 이것 저것 많은 걸 해 볼 수 있다. 나도 스타트업에서 200도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매일 야근하는 삶을 살고 보니, 뭐라 해야 할까, 세상살이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해야 하나. 진짜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이번 퇴사는 철저한 무계획 퇴사인데 이직 계획 없이 무작정 나와도 되느냐고들 많이 묻길래 편의점 알바를 해도 지금만큼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걱정 안 한다고 말한다. "어딜 가도 여기보단 나을 거거든요.")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경우라면 자신들의 경력이 다 포트폴리오로 차곡차곡 쌓이니 이런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면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영업/마케팅/CS와 같은 직무들... 요컨대 개발/디자인/기획처럼 특화된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직무라면 웬만해선 누가 스타트업 취업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좋은 스타트업도 분명 있을 거다. 근데 그 "좋은 스타트업" 찾기가 쉽지가 않다는 얘기다. 나도 처음에 이 회사 지원하면서 어떤 투자사로부터 얼마의 투자를 받았는지, 경영진의 학벌이나 경력이 어떠한지 등등,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다 수집해서 "이 정도면 미래가 기대되는 회사이겠거니" 하고 들어간 거였는데도 이렇게 쓰레기판이었다. 좋은 스타트업을 찾느니 그 노력으로 차라리 체계 잡힌 제대로 된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좋은 스타트업을 찾을 노력이라면 그 노력 딴 데 써도 분명히 성공한다. 

 


 

결론,

 

행여나 돈은 적게 받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는 이유로 스타트업에 지원하고자 한다면

 

(1) 돈을 적게 주는 회사라면 애초에 사장 인성이 글러먹었을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음.

(2) 생각만큼 한국 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고

(3) 애초에 인성이 글러먹은 사장이라면 하고 싶은 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직일 리가 결코 없음

(4) 그러므로 그냥 그런 거 없다고 보면 됨

 

이것만은 꼭 명심했으면 한다. 빻은 양아치 사장 밑에서 갈려가며 노동을 하기엔 당신들의 젊음은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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